
황보정은 첫 번째 개인전 '감정선(感情線)'
작품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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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이야기가 있듯이 저의 작품에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감정선'이라는 이번 첫 개인전에서 저는 다양한 감정을 통하며 겪는 저의 두 번째 성장통을 여러분과 이 전시를 통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1.술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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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9일
엄마 생신이었어
집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지
지하철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길인데 갑자기 어디선가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주변을 서성거리는 거야
아무래도 난 네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어
엄마 생신인데 엄마한테 차마 못 가고 나한테 온 건지 눈물도 맺히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떠난 건지 화도 나고 작고 소중한 니가 너무 그립기도 하고...
2021년 4월 7일 밤
불현듯 그날의 나비가 떠올랐어
나비가 된 너를 내 몸에 새겨 넣고 싶었어
타투를 받으러 갔어 근데 사실 조금 무서워서 술을 마시고 타투를 받았지 그래도 너무 아프더라 나는 취했고
타투를 끝내고 새벽이 되었어 집으로 돌아왔지
나는 더 술을 마셨어
거울 속에 비친 내 허리에 새긴 너를 보며 한참 소리 내어 울었어
사실 혼자 보낸 그 길을 생각하면 죄스럽고
말 한마디 없이 떠난 너가 너무 원망스러웠고
모두 다 내 잘못이 된 것만 같은 이 상황이 내 기분이
나를 화나게 했어 너와 나에게 화가 났어
술에 취해 붓을 들었어
이상하게도 오늘은 선이 거칠게 그려지더라
이렇게 과감하고 세게 선을 그린 건 처음이야
4월의 새벽
취기 그리고 눈물과 화로 덮쳐진 그림을 그렸어
2.일장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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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꿈에서 깼어
니가 말없이 떠난 4년의 그 시간들이 다 꿈이었던 거야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악몽이 있나 싶었다니까?
얼마나 안도했는지 몰라
나는 14살로 돌아갔고 너는 7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꿈이었어
근데 또 꿈에서 깼어 꿈속에서 꿈을 꾼 거더라
꿈에서 깬 뒤 정말 많이 울었어 꿈속에 너만 놔두고 나온 것 같아서
미안해서 눈물이 그쳐지지 않았어
그 상태로 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게 물감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갈 만큼
난 너무 슬펐어
3.자각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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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야
왜 요즘에는 꿈에 나타나지 않아?
이제 나 보러 안 오는 거야?
나 안 보고 싶냐..
꿈에라도 만나고 싶어 나한테 화를 내던 웃어주던
뭐라도 좀 해봐
얼굴 한번 만지는 거 손 한번 잡아보는 거면 되는데
매일 밤 너를 꿈꾸려고 얼마나 바라는지 알아?
나 요즘 은이 너의 꿈을 꾸고 그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생각을 한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정신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 밤이야
4. 척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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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곤 해
나는 웃음이 나서 웃는데 웃음 안에 슬픔이 있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기분이 좀 나빴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정말 웃는 건지
울고 싶은데 나도 모르게 들키기 싫어서 감추는 건지
이런 생각이 한참 들다가 또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이 그림 하나가 한 달이 넘게 걸렸어 계속 감추고 또 감추게 되더라
결국 아직도 완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이쯤에서 붓을 놓았어
이 정도면 이쯤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
나도 이제 이 정도면 됐을까?
이제 은이 너를 놓아줘야 하는 걸까?
5. 척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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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 언니가 너무 아프고 힘든데 말할 곳이 없어
너를 하나도 잊지를 못하는데 표현을 할 수도 없어
매일 그리운데 그립다고 말할 곳도 없어
매일 새벽마다 눈물이 나는데 아무한테도 말을 못 해
다 감춰야 되니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나는 원래 강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보여야 하니까
나는 어떻게 해야 맞는 걸까
혼란스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래서 매일 새벽 그림을 그려
6. 소확행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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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2010년이 떠오르더라
우리가 진짜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이었는데
나 스무 살 너는 열세 살 때
기억나지
너랑 나랑 집에 둘이 있었잖아
근데 둘 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아직 월급날이 며칠 남아서 현금이 없었잖아
그러다가 생각한 게 돼지 저금통이었어
돼지 저금통 배를 갈랐지
그 안에는 10원짜리, 50원짜리, 100원짜리, 500원짜리
딱 2,500원이었잖아. 그걸로 자장면 딱 한 그릇을 시켰어
우린 둘이 그 자장면 한 그릇을 나눠먹고 또 밥까지
비벼 먹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날은 다시 오지 않겠지 다신 할 수도 없는 거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날의 자장면, 우리의 행복’
7. 요플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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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 어른이 되고 나서는 함께한 추억이 별로 없었어
어릴 때 기억밖에는
네가 한 살 때 엄마가 요플레를 먹으라고 주셨는데
어린 너는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손으로 퍼먹었어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엄마가 사진으로 남겨놨었어
그리고 엄청 추운 겨울날 아빠랑 너랑 나랑 손잡고
새우깡을 사러 슈퍼에 갔었던 일도 생생하게 기억나
여름날 우리 가족이 다 함께 바다에 놀러 가던 날
너랑 나랑 말다툼을 했는데
갑자기 네가 내 팔뚝을 피나도록 깨물었었지
꽤나 오랫동안 상처가 있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서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은이 니가 언니는 아주 백 번도 넘게 말한다고
그만 좀 말하라고 그랬는데
이제 언니는 서른 살이 넘어서 그 상처가 거의 흐릿해
난 이제 그 상처가 흐릿해진 게 왜 이렇게 싫지
8. 흐림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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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해
너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너를 그리워하는 건지
아니면 언젠간 다시 만나지 않을까의 기대감으로
너를 기다리며 사는 건지
나는 지금 점점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래도 되는 걸까?
힘이 많이 들어가던 그림들이
조금씩 힘을 빼고 그려가거든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내가 널 잊는 건 아닐까?
사실 좀 두려워 널 잊을까 봐
아무도 널 기억하지 않을까 봐
9. 흐림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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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생각을 하는데 사실 조금 기대하고 있어
내가 죽는 그날이 오면 그때에는
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만약에 내가 널 다시 만난다면
이때까지 잘 지냈냐고 왜 이렇게 빨리 가버렸냐고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갔냐고
화내고 울면서 너에게
안기겠지
그리고 너는 언니는 나이 먹고 아직도 맨날 우냐고 하겠지
하늘에서 언니 너 지켜보는데
속 터지는 줄 알았다고 잔소리하겠지?
이런 날이 온다고만 하면
30년 아니 100년이 넘게 걸린다고 해도
은이 널 만날 그날만 기다리면서 웃으면서 기다릴 수 있는데
우리 꼭 그러자 꼭 만나자 은아
이제는 많이 울지 않을게 너와의 시간을 추억하면서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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